저번 주부터 청년고전학교에서는 루쉰과 카프카에 대해 배웠어요. 루쉰은 이름이라도 조금 들어봤지만, 카프카는 정말 생소! 그 자체였는데요.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카프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결국 문샘도 카프카의 자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며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셔서 재밌었어요ㅎㅎ
루쉰
루쉰에 대해 인상 깊었던 것은 <아Q정전> 속 '아Q의 정신 승리법'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Q에게는 끊임없이 불행이 닥치는데, 그 때마다 그 불행을 합리화하며 정신 승리로 극복해요. 예를 들어, 자신을 때리는 힘 센 사람을 만나면 "나는 지금 버러지한테 맞은 거야"라면서요. 자신의 현재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상대를 나쁜 걸로 만듭니다. 상대가 악하고 버러지이기 때문에 나는 괜찮다는 방식으로 세계를 만드는 인물이 아Q입니다. 루쉰은 아Q가 바로 중국 사람들이라고 봤어요. 그 당시 부조리한 시대 특성상 민중은 선하고, 해방시켜야 하는 존재라고 보기 쉬운데, 루쉰은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루쉰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든 자신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깨어있는 사람들이 깬 그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어떤 세계도 만들어 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거 같습니다.
아Q의 정신승리는 저도 뜨끔하게 만들었습니다. 타인과 트러블이 있을 때 마음속 불편함을 빨리 털어내고 싶어서 '쟤가 이상한 거 아니야? 그니깐 나는 괜찮아'라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이 속이 편했기 때문이죠. 그럼 나는 어떻게 스스로 깨어나야 할까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카프카
카프카는 후기 쓰기가 난감할 정도로 어려웠는데요. '무엇이 어려운 것인가'하고 생각해보니, 카프카의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의 이미지와 무척 다르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기존의 자유는 모든 속박을 벗어나 본인의 의지로 훨훨 날아다니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카프카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해볼게요!
카프카는 우선 '목적론'을 거부합니다. 살아가는 삶이 내재적으로 풍요로운데, 초월자가 이래라저래라하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신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신이 있는 게 아니고 신이 내 안에 이미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을 우리가 만날 수 있는가, 그 신을 당신이 떠날 수 있는가를 카프카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카프카는 저희와 선생님이 주고받은 질의응답을 정리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질문 시간에 나온 것을 예로 들어 볼게요!
Q1. 여성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왜 여자는 이렇게 하면 안 돼?"라며 문 앞에서 질문을 계속 해야 한다는 건 이해했다. 근데 그 앞에서 개굴개굴을 하라는 것이 어떤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A. (문샘)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게 될 때 질문에 답을 구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근데 질문에 답하는 걸 우리가 어디서 기대하냐면 이 질문이 놓인 자리 위에서 답을 구합니다. 질문을 던진 자리를 떠나지 못해요. 근데 답을 구한다는 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장에 있다는 것은 여전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깐 여성으로서의 질문을 던진다는 건 남성/여성이라고 하는 위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여성에 대한 근사한 답을 얻어도 그것은 남성/여성이라고 하는 이분법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이에요.
개굴개굴 한다든지 외국어를 한다는 건 이 전제 자체를 깨부수는 곳으로 가는 질문들, 답을 구하는 문제 이전에 이 전제 자체를 깨뜨릴 수 있는 자리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Q2. 본질 자체가 없고, 질문을 하며 다른 언어로 대답해야지 빠져나올 수 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감이 안 잡혀요.
A. (선민샘) 카프카의 문제의식을 개인으로 돌리면 개인 정체성 같은 것을 찾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봐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이 누구랑 만나서 뭘 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걷느냐, 집에 무엇을 두느냐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의 삶을 규정한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을 조금 조금씩 바꾸면 다른 삶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에요. 근데 여기에 어떤 대상의 본질을 넣어서 생각을 안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다음 이라는 거는 없어요. 원래 없고 아무리 해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숭이의 배움 같은 건 그냥 모방이라고 나와 있기도 한 거예요. 카프카는 '인간은 이러해야지' 이런 생각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고 싶어 해요. 어떤 대상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보려고 합니다.
(문샘)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보면 빨간 원숭이 피터가 "나는 자유를 원하지 않았다. 출구를 원했다" 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자유와 출구가 뭐가 다를까요? 어떤 차이를 갖는 걸까? 자유는 이 존재가 얻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갖고 얻는 거라면, 출구는 이 존재가 어찌 되는 건 둘째 문제죠. 빨간 원숭이 피터한테는 내가 원숭이로서의 본질보다 더 중요한 것 또는 원숭이로서의 본질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것으로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설명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카프카가 무척 어려웠지만, 왜 목적론을 반대했는지 궁금해져서 스스로 조금씩 카프카에 대해 슬~그머니 알아보려고 합니다. 혼자서는 만나기 힘들었을 듯한 루쉰과 카프카를 먼저 만나본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배우니 살짝 용기를 얻었습니다. 카프카.. 너무나 어려운 것..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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