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요약
C.P SNOW 의 유럽의 지식을 떠받치는 큰 두 가지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인문학이고, 하나는 과학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근데 놀라운 점이, 이 두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각각 대화를 하지 않고, 자기의 것만 알고 있을 뿐이고, 서로 상대방에 대해선 모를 뿐만 아니라 적대적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밌는 건 일반인들은 인문학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교양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과학과 기술은 일반인이 아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만 알아야 되고, 그걸 알면 이상한 사람처럼 느끼는 풍토가 존재한다는 걸 지적하고 비판하는 책이다.
이런 문제가 우리 사회에는 없는가?
그렇다면 과연 교양이란 무엇인가?
다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이란 책에선, 실질적으로 과학을 다루는 부분은 700페이지 중 1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다. 여기서 교양을 정의하길, '교양이란, 사회 속에서 각 개인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성찰의 결과를 실천으로 이루어내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준에서 볼 때, 과학은 이런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과학은 어디에 써먹는가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과학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다. 스마트폰, TV를 만들게 해주고 돈을 벌게 해주고, 눈부신 경제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 -> 돈을 버는 데 도움을 준다 ; 즉, 이런 게 교양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음.(실용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과학도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해준 여러 사건 중에서, 대표적인 건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우주의 중심이 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학설 이후 우리는 태양 주위를 도는 하나의 행성이고, 태양조차 거대한 은하계 변방의 작은 하나의 별이란 걸 알게 됐다.
이것보다 더 인간에게 자신의 성찰을 요구한 적이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후에,
또 한 번 큰 성찰을 강요받는다.
우리가 우리의 주변의 수많은 생명체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그들과 동등하다는 걸 얘기하는 다윈의 '진화론'이다.
저는 자연과학이 인간에게 충분히 성찰을 주는 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즉, "과학은 교양이다"
이 얘기를 하기에 앞서,
과학이 뭔지를 조금 더 정의해보자.
내 방식대로 좀 더 쉽게 정의하면,
"어떤 것이 과학적"이라고 함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보편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증거를 갖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진리라는 얘기를 하진 않겠다. 진리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는 얘긴데 그건 알 수 없다.
어떤 것이 과학적이라는 건 단지 이게 다이다.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쓰고 강조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과학을 교양으로 받아들여야 할 만큼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굉장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 예를 들면,
올 6월 한국 창조론자들이 교과서를 만드는 곳에 압력을 넣어서 교과서의 진화론 부분을 바꿨다는 기사이다.
특별한 종교를 비난한 의도는 없다. 일부의 종교는 자기의 교리의 일부를 과학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분들이 교리의 일부가 과학이 되길 원한다는 건, 자신들의 교리가 보편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증거를 갖길 원한다는 것인데, 저는 왜 종교가 그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다. 이 부분에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필요로 하는 또 한 가지 예를 보면, 기사 "대통령은 A형 또는 O형이다"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에 혈액형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가는데, 사실 이 기사가 굉장히 웃긴 것이 대한민국 사람의 34%가 A형, 28%가 O형이니까 이 둘을 합치면 62%다. 대통령의 대부분이 A형 O형이라는 말은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의 대부분은 김 씨, 이 씨, 박 씨, 노 씨다. 이 네성을 합쳐도 50%가 안된다. 사실, A형 O형이란 말은 더 정보가 없는 statement(진술)다. 하지만 여전히 놀랍게도 이 혈액형 성격에 대한 얘기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만 나오는 얘기고, 이것을 외국에서는 "Blood type in Japanese culture"라 부른다. 일본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사람을 채용할 때 혈액형을 보는 경우도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걸 장난으로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걸 연결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 사회에 과학적 사고방식이 아직도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이란 다시 강조하지만,
물질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객관적 증거가 없이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신문기사를 읽을 때에도, 신문 기사를 재미로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신문 기사의 내용들은 우리가 읽고 판단을 해야 될 때가 많다.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그냥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사건을 들었을 때 '오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럼 한 번 찾아보자!' 하고 네이버를 찾아보고, 그리고서는 기사 내용을 읽다가 재미없으니까 대충 보고, 댓글을 열심히 읽는다. 댓글의 절반 이상은 욕이다.
과학에서는 객관적 지식 이외에 주관적인 지식은 전혀 필요가 없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라고 옳지 않다.
뉴턴이 한 말도 필요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보편적이고 재현 가능한 형태로 물질적 증거를 갖는 것만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맞는 거고, 그게 아니면 틀린 거다. 여러분이 정말로, 어떤 사건의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싶으면 그런 객관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결론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아우 갑갑해." "어떻게 객관적 근거만 찾고 살아?"
근데, 과학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과학에는 또다시 인문학이 갖고 있어야 되는 여러 요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번 저희의 주제인 '상상력'이다.
상상력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아마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이런 상상이 제일 재밌고, 제일 황당한 답이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상상력이 많이 있는데, 매트릭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낱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다. 프로메테우스 영화도,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다 생명을 심었다는 얘길 한다. 이것도 대단한 상상력이지만 이거는 과학 이론 가운데, 아직 가설이지만. 이런 이론 가운데 하나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상상력에 나래를 펼칠 수도 있지만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조금 더 나갈 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빅뱅이론'이다. 사실 되게 황당한 이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옛날에는 한 점이었다. 우리 모두가 옛날에는 한 점에 있었다. 한 점. 여러분과 저 뿐만 아니라 우리와 화성, 태양 저 멀리 은하가 다 한 점에 있었다. 그게 뻥 터지면서, 쫙 팽창해서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이다. 참, 믿기 어려운 얘기다.
뿐만 아니라 제가 전공하는 양자 물리학에서는 이게 아까 슈뢰딩거 방정식이었죠? 어떤 말을 하냐면, 입자 한 개가 같은 시간에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이게 여러분 몸에 분자의 안정성을 설명해 주고 있다. 말도 안 되죠. 어떻게 입자 하나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지? 하지만 이 과학적 상상력과 앞에 있는 영화적 상상력의 차이점은 과학적 상상력은 마음 아프게도 보편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증거를 보여줄 수 있다. 그 차이밖에 없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교양이란 것은 여러분이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과를 실천에 반영하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더불어서 과학의 두 개의 날개를 가지셔야지만, 진정한 교양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을 꼭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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